나를 알아가는 시간(2023) N
No.9508575학생상담센터 이용후기
2023학년도 이용후기 공모전 (주제:심리상담, 우수상)
1. 상담 신청 계기 ‘판도라의 상자’
제가 처음 상담을 신청하게 된 계기는 ‘친한 친구와의 다툼’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친구와 갈등 상황을 겪은 후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꼈고
친구와 관계를 끝내야 할지, 이어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담을 받기 전 친구와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게 되었고,
상담 당일 저는 저에게 남은 고민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오래된 저의 문제들을 점차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오셨어요?”
“그게, 지금은 고민이 해결됐어요. 친구와 화해했거든요.”
“그럼 상담이 필요 없으시다는 건가요?”
“하지만 뭔가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어요.”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 찝찝함이 입안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럼 처음부터 다시 되짚어 보죠.”
그렇게, 저는 과거의 기억을 뒤적이기 시작했습니다.
2. 나는 나 너는 너
“저는 착한 사람입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그래서 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들도 많죠.”
“ 하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까지 들어주는 게 지쳐요.”
“가끔은 도망치고 싶어질 정도로.. 하지만 저는 친구들이 없는 제가 잘 상상이 되지 않아요.”
“그들을 거부할 수가 없어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많이 받아서 힘들어요.”
저의 자랑거리는 사람들과 잘 지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누구와도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그 사람의 마음을 쉽게 알아차리고 공감해줄 수 있습니다.
저를 찾고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저는 존재 가치를 느꼈습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타인을 위하고 맞춰주다 보니 저라는 사람의 색깔은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나와 너라는 경계가 불분명했던 탓에 저는 쉽게 타인의 영향을 받고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휘둘리며 살았기에, 나만의 선과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상담 목표는 3가지로 정해졌습니다.
‘끊고 맺는 것을 확실하게 하기’,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기’,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를 먼저 생각하기’
그동안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는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거나 눈치를 보고,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로 어느 상황과 관계에서 나의 판단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게 되는지,
앞으로 어떻게 바뀌고 싶은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 번째는 새로운 도전, 특히 어렸을 때 실패했거나 나는 이런 것을 하지 못한다고
단정 짓게 된 것들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편이었고
두 번째는 과거의 기억이 불명확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인간관계를 맺고 끊는 것을 확실하게 하지 못한다는 점인데,
관계가 예전과 같지 않더라도 쉽게 끝내지 못하고,
연애에 있어서 연인 관계로 발전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용기를 가지고 나의 한계를 깨고, 과거의 상처를 잘 보내주고,
인간관계에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 맺고 끊는 것을 확실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3. 과거를 보내주는 일
“생각해보니 아주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르는 날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원래 제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건 줄 알았어요.”
“머릿속이 온통 물음표로 가득 차고,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에요.”
“너무 오랜 시간 묵혀두었던 일이라 헤집을 엄두가 안 나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여버린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혼란스러워요.”
어릴 때, 저는 이성적이고 냉철한 어머니와 무기력하고 감정적인 아버지와 함께 살았습니다.
엄마는 감정이 없는 사람 같았어요.
제가 눈물을 흘리면 화를 내시며 운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고 하셨습니다.
또 저를 과잉보호하시면서 동네 운동장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엄마에게 혼나기 싫어서 몰래 방문을 잠그고 울곤 했어요.
점점 소리 없이 울고, 그러다 저도 엄마처럼 감정을 숨기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죠.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웃는 얼굴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항상 착한 아이의 모습으로 엄마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어요.
아빠는 그와 반대로 직장에 잘 적응하지 못하시고 불안한 모습을 많이 보이셨어요.
하루 종일 티비를 보시며 한숨을 쉬시다가도 어느 날은 아이처럼 흥분된 목소리로 집안을 휘젓고 다니셨죠.
매일매일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아빠의 모습에 저는 혼란스러웠어요.
초등학생 때 아빠는 장난을 치며 저에게 성추행을 했고 오빠의 신고로 집에 경찰이 오기도 했어요.
그때 엄마는 동네에 소문이 날 것을 두려워하면서 경찰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하셨어요.
중학생 때는 아빠가 자살 시도를 하셔서 119 대원들이 왔어요.
엄마는 역시 이 일에 쉬쉬하셨어요.
다행히 상처가 깊지 않아 생명에 지장이 없었고 정신병원으로 이송되셨습니다.
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두 가지 사건이지만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그건 우리 집안의 비밀이었으니까요.
아빠는 지난 일에 대한 죄책감과 함께 피해망상과 조울증을 겪으셨어요.
저에게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준 아빠지만
병원 생활을 하며 핼쑥해진 아빠의 모습에 연민의 감정이 느껴졌어요.
여러 기억과 함께 감정이 뒤섞이며 과거에 대한 어떠한 판단도 내릴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그때 당시에는 묻어두는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과거를 묻어둔 채 살다가 상담을 통해 기억을 끄집다 보니
지금의 엄마 아빠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다시금 혼란스러워졌지만,
저는 이미 엄마 아빠를 용서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제는 과거를 마주하고, 잘 보내주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는 고등학생 때 저에게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그때부터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면서 오해가 풀렸습니다.
그 후로 엄마는 항상 따뜻하게 말하려고 노력하시고
엄마와 다른 저의 모습을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십니다.
아빠도 직장에 적응하시고 예전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시면서 저에게 매일 안부 연락을 보내십니다.
4. 다시 시작하기
과거를 털어놓는 일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오랜 시간 묵혀두었던 만큼 속이 후련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그동안 내가 갖지 못했던 자기확신이 생겼고, 모든 원인과 결과가 명확해졌습니다.
나는 사실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것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동안 미뤄왔던 것뿐입니다.
어릴 적의 저는 항상 어른이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사실, 자신을 도와줄 어른을 기다렸던 것일 테죠.
지금의 저는 어른이 되었고, 과거의 저에게 손을 내밀 만큼 자랐습니다.
저는 과거를 잊은 것이 아니라, 과거를 기억하고, 담담히 받아들이고, 용서했습니다.
모든 상처와 아픔을 기억하고 받아들이고 안아주고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그동안 버텨준 나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의 저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대학생이 되었고, 독립을 했고,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먹고 싶은 걸 먹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저를 책임질 힘이 있습니다.
상담을 통해 새로운 행동을 도전하면서
그동안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단정 지었던 것들이
막상 해보니 별 일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큰 용기가 생겼습니다.
또 ‘친한 친구에게 고민이나 비밀 털어놓기’, ‘가족에게 편지 쓰기’ 등으로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고백하는 일을 시도해봤는데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나에게 실망하거나 나를 떠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목표는 나의 기준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확실히 하고 나의 판단을 믿는 것이었는데,
한 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내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는 나만의 기준이 생긴 것 같고
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변화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라는 것과
지금 나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단호한 결단이 필요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시간과 에너지 관리를 잘하는 것도 저의 목표였는데
쉽지는 않지만 조금 더 신중하게 약속이나 일정을 잡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음을 생각하면서
선택과 집중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5. 상담을 마무리하면서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길을 잃었을 때, 제가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혼자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함께 고민하며, 방법을 찾아나가는 길이 외롭지 않았고 든든했습니다.
두 달 동안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함께 고민해주신 상담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앞으로 어려운 사람을 기꺼이 도와줄 수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내가 어렵고 힘들 때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뻗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그런 용기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저에게 변화는 단지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지난 일들을 잘 보내주고 새로운 날을 맞이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과거에 대한 후회보다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긍정적이고 행복하게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