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학년도 상담센터이용후기 공모전 장려상1 작품 '개인상담' & '마음건강증진 집단상담' N
No.1820041학생상담센터 이용후기
2021학년도 이용후기 공모전 장려상 작품
(학과 이름 등 개인정보를 제외함)
1. 개인상담
군 복무 중, 강박증이 생겼다. 아니, 강박증이 있음을 알아차렸다는 게 맞는 말일 터다. 실수는 잘못으로, 그 잘못은 당연히 비난을 받아 마땅한 죄가 되는 군대에서 나는 살아남고 싶었다. 작은 지시에도 온몸을 바짝 세웠고, 더 완벽하게 하려 했다. 매번 제대로 하고 있는지 스스로 되물었고, 실수한 것을 찾아 바로 고치려 했다. 이게 문제였다. 실수를 찾으려 한 것. ‘시안견유시(豕眼見惟豕) 불안견유불(佛眼見惟佛矣)’이라는 말처럼, 실수가 아닌 것도 실수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확인한 것도 계속 확인하려 들었고, 생활관으로 돌아와서도 빼먹은 게 있을지 모른다며 불안해 했다. 그러다 못 참고 다시 사무실로 가 확인을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게 일상이었다.
원래 강박 성향이 있었다. 집을 나갈 때 가스 밸브를 몇 번이고 확인한다 거나, 짐을 챙길 때 제대로 챙겼는지 계속 확인한다거나. 그러나 그때는 이것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그저 꼼꼼한 성격일 뿐이라고, 나의 개성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군 복무 중에는 달랐다. 고통스러웠다. 선임과 상사라는 일종의 감시자가 있었기 때문일까. 언제든지 혼날 수 있다는 생각에 늘 두려워했다. 강박 성향은 강박증으로 변했고, 고통은 커져만 갔다.
군 전역을 하면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 군대에 있을 때 생긴 일이니까, 군대를 나가기만 하면 전부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며 나를 다독였다. 그렇게 버텼고, 전역을 했다. 그러나 전역 후에도 강박증은 똑같았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방 청소와 빨래에 결벽증이 생겼고, 이제 나를 혼낼 사람은 없음에도 무언가 잘못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혼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늘 청소하고 무언가를 확인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무언갈 하지도 못했다. 전역하면 꼭 하겠다던 미래의 계획들은 강박증 뒤로 밀려났다. 온갖 심리학 책과 영상의 실천으로 강박증을 해결해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때 생각했다.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심각성을 느끼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신과는 경험이 있었다. 강박증이 아닌 우울증으로 가봤다. 나의 마음을 헤아려 준다기보다 충고하려는 의사 선생님의 태도 때문에, 정신과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 내 상담 센터를 방문했다. 이것도 경험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울증 때문이었다. 그러나 개인 상담 도중 멋대로 연락을 끊고 나가지 않았던 지라, 방문을 꺼렸다. 상담을 못 받을 거라는 두려움과 그래도 강박증을 해결하고 싶다는 절박함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문을 두들기기 전에, 예전의 상담 선생님께 꼭 사과를 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코로나로 인해 개인 상담 신청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처음 마주하는 선생님께서는 미리 받은 신청서를 보며 이것저것 질문하고 말씀해주셨다. 내가 생각하는 문제점, 상담 진행 방식, 상담의 목표 등.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예전의 상담 선생님은 더 이상 학교에 계시지 않는다고 했다. 상담 도중 연락이 갑자기 두절되는 경우는 흔하고, 그 선생님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 크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다고 말씀해주셨다. 감사했다. 덕분에 나의 문제 해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개인 상담은 매주 1번, 금요일 오후에 진행됐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대화를 하며 차근차근 문제의 원인을 알아갔다. 군대에 있을 때부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던 지라 상담은 수월했다. 선생님께서도 스스로 잘 찾아내고 정리해온다고 칭찬해주셨다. 이때 나는 나를 되돌아보는 능력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 행동은 왜 이렇게 나온 것인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논리적으로 정리해 선생님께 설명해드릴 때마다 돌아오는 감탄에 스스로 뿌듯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감정에 있어서는 예외였다. 이 행동을 할 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렇게 생각할 때는 어떤 기분이 들었는 지의 질문을 받을 때면 늘 버벅거렸다.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는 게 거북하거니와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제일 많이 했던 질문은 언제나 감정에 관한 것이었다.
상담 목표는 확인하는 횟수를 줄이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확인하는 습관을 없애는 게 아니었다. 줄이는 것이었다. 나의 성향이 꼼꼼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그 정도만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나의 꼼꼼함을 늘 긍정적으로 바라봐주셨고, 점차 나도 그렇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꼭 완전히 버릴 필요는 없었다. 내가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을 정도로만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나를 수용하는 태도. 상담에서 얻은 첫 번째 값진 배움이었다.
확인하는 횟수를 줄이기 위해선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실수는 누구나 하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알려주시기 위해, 선생님께서는 본인의 삶을 이야기해주셨다. 삐걱거리고 서툴지만 분명 앞으로 나간 순간들을 여러 가지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럴 것이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알려주셨다. ‘실수는 누구나 한다’는 말은 수없이 많이 듣고, 또 내게 되뇌던 말이었다. 예전에는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그래도 하지 않으면 좋은 것, 실수한 사람들의 변명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본인의 삶을 알려줌으로써, 내가 실수를 삶의 마중물로 삼는 태도를 가르쳐 주셨다. 상담에서 배운 두 번째 값진 배움이었다.
상담이 진행될수록 나는 나의 삶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실수를 받아들여야 앞으로 나갈 수 있음을 깨닫고, 확인하는 습관은 줄인 채 내 미래를 위한 계획을 다시 세웠다. 선생님의 격려와 지지를 받으며 나는 실천하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학교 공부, 커피와 요리 공부, 집단 상담 참여. 차근차근 하나씩 밟아나갈수록 확인하는 습관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집중할 것들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강박증이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알았다. 강박증의 원인 중에는 내가 마주해야 할 미래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음을 말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래로 들어가기 두려워, 확인해야 할 것들을 찾아 나선 것이다. 중요하지 않은 것도 중요하게 바라보며, ‘봐, 나는 이렇게 중요한 걸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미래를 준비할 수 없어.’라며 자기 합리화를 한 것이다. 그 도망침의 결과가 강박증 이었다.
작년 10월 상담이 끝났고 지금은 방학이다. 미래를 위해 해야 할 것에 집중하다 보니 강박증은 계속해서 줄었고, 일종의 성취도 있었다. 수업 출석률과 학점이 올랐고, 수업 내에서 상을 받기도 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뚜렷해졌다. 조만간, 이 사실을 선생님께 알리러 상담 센터에 갈 예정이다.
2. 마음건강증진 집단상담 <미술과 향기로 마음디톡스>
학교 상담센터에서 개인 상담을 하던 때였다. 어울림 사이트에 집단 상담원 모집 공고문이 올라와 있었다. ‘미술과 향기로 마음 디톡스.’ 끌렸다. 미술 활동을 마지막으로 한때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지만, 무언가에 마음 편히 몰입하던 순간은 생생히 기억했다. 고등학교 미술 시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언갈 따라 그렸던 때. 그 몰입의 순간을 다시 경험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경험을 집단 구성원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큰 고민 없이 신청했다.
첫 만남은 언제나 그렇듯 어색했다. 선생님도, 집단 구성원들도. 서로의 별명으로 집단명을 짓고 이유를 얘기했다. 그 이유를 말할 때 저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각자의 삶을 귀 기울여 들었다. 다양했다.
집단 상담은 상담명 그대로 미술 활동을 기반으로 진행됐다. 함께 한 공간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색칠하고, 만지며 놀았다. 처음 만져보는 플로랄 폼과 향수 공병, 오랜만에 만져보는 붓과 찰흙. 모두 나를 표현하는 도구였다. 마음 디톡스라는 말 그대로 스트레스라는 마음의 독을 빼내는 작업이었다. 그 중 파스텔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작지만 단단하고, 종이에 부드럽게 자신의 몸을 갈아 색을 내는 자연스러운 촉감이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색칠을 하다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힐링 사진 촬영 또한 좋은 시간이었다. 일단 카메라가 생기니 뭐라도 찍어야겠다는 생각에 나를 밖으로 나가게 했다. 집 근처 공원을 걸으며 새삼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걸 알았다. 그만큼 날씨가 따뜻하고 포근했음도. 사진기를 들고 산책을 하다 보니 작은 것들이 눈에 잘 들어왔다. 풀, 꽃, 새. 걸으면 걸을수록 더 많은 종류의 것들이 내 앞에 튀어나왔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이겠지만, 내게는 새로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내가 찍은 사진을 모두에게 보여주니, 잘 찍었다고, 어디냐고 물었다. 나는 집 근처 공원이라는 대답을 하며 위화감을 느꼈다. 멋진 사진은 특별한 장소에서 찍은 것이어야 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내 방만큼 아주 작고 가까운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스스로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뜨리고 싶다고 생각했고, 최대한 집 근처에서 사진을 찍는 버릇을 들였다. 고양이, 마당의 식물, 작은 새, 하늘. 내 사진첩은 이런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아름답다.
집단 상담이 끝날 무렵, 롤링 페이퍼를 만들었다. 집단 상담 중 가장 궁금한 내용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 속에서 나는 내가 꽤 적극적인 면이 있음을 알았다. 내성적이지만 적극적이란 말이 여러 번 적혀있었다. ‘내성적이지만 적극적’이다. 나는 그동안 나를 내성적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리 에너지와 용기를 써도 적극적인 사람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둘은 엄연히 함께 쓰일 수 있는, 다른 범주의 말이었다. 사진첩에 롤링 페이퍼를 붙여 넣으면서,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펼쳐보자고 생각했다. 근처 문구점에 가 색연필과 컬러링 북도 샀다. 밤마다 색이 종이에 스며드는 감각을 느끼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