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학년도 2차 이용 후기 공모전 장려상5 작품 '개인상담' N
No.1514407학생상담센터 이용후기
2020학년도 2차 이용 후기 공모전 장려상 작품
(학과 이름 등 개인정보를 제외함)
우수한 성적 덕분에 입학장학금을 받고 영어교육과에 입학했지만 한없이 뒤쳐지는 수업 이해도와 흥미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낮은 학과 등수 때문에 충동적으로 휴학을 결심했다. 나에게 맞는 진로를 찾는 즉시 여길 자퇴할 생각이었다. 관심도 없는 학과에 몸을 담고 있어봤자 시간낭비만 할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1학년 1학기를 마친 학생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르바이트가 전부였고, 막상 고졸로 살아가자니 차마 자퇴할 용기조차도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내 머리, 내 손으로 결정한 휴학이니깐 그에 따른 결과도 내가 다 감당해야 한다. 오랜 시간동안 부모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 결과, 결국 2020년 2학기에 복학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심리적 불안감으로 인해 충동적으로 결정한 휴학이어서 특별한 계획도 없었다. 인터넷에 ‘휴학 계획’을 검색해보니 남들은 휴학기간동안 인턴을 나가고 토익 등 어학점수를 취득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고작 1학년 신분으로 저런 스펙을 준비하는 것은 시기상조인 것 같았다. ‘비록 무계획 휴학이어도 내가 이를 결심한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 일단 대학 졸업 후에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를 차차 생각해보자.’ 리는 마음으로 학생상담센터에 문을 처음 두드렸다.
초반에는 나의 다친 마음을 위로 받는 동시에 전문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 심리, 취업 상담 등을 신청하였다. 하지만 선생님들께서 나를 위해 건네주시는 조언들이 당시 나에게는 가시처럼 날아와 내 마음을 콕 찌르는 듯했다. ‘사범대에 대해서 너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 ‘취업을 하고 싶으면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칫하다간 시간낭비가 될 수 있다.’ 등등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지만 그때 내가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은 ‘열심히 살아왔는데 모든 게 다 부질없어보였죠? 괜찮아요. 그럴 수 있어요.’ 와 같은 뻔하디 뻔한 위로였다. 그래도 그나마 내 속을 털어놓을 공간은 있었지만, 그때 당시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들 방황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는 듯한 표정을 짓곤 했다. 나만 혼자 같은 말만 반복하는 한 마리의 앵무새처럼 덩그러니 남겨져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진로를 위해 머리를 골똘히 굴리기도 하고 제 발로 열심히 뛰었다. 사람으로 도움을 받지 못했으면, 테스트는 나를 도와줄 수 있겠지. 라는 마음으로 학생상담센터에서 열린 MBTI 심리검사 및 특강, 에니어그램 holland 심리검사 등에 참여하였다. 놀랍게도 나와 어울리는 직업에 모두 “교사”가 있었다. 처음에는 ‘임용고시는 응시할 생각도 없는데 너마저도 이럴래?’ 라며 반항했지만, 생각을 깊게 해보니 학교뿐만 아니라 학원에서도 충분히 교사 일을 할 수가 있다. 또한 교육기업에 입사하여 교육콘텐츠를 제작하는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교육기업의 신입사원 모집공고를 보아하니 사범대 등 교육 전공자를 우대한다고 한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사범대생이 임용고시 안 보면 뭐해? 백수나 다름없지.” 라는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인 말 때문에 위축되어 있었는데 막상 깊게 살펴보니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어릴 적부터 한국의 주입식, 암기식 교육법에 깊은 환멸을 느끼고 있었던 탓인지 홀로 생각해놓은 교육콘텐츠는 매우 많았고, 이를 발판으로 삼아 교육콘텐츠를 손수 제작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원강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덕분에 꿈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이제 더는 남들이 뭐라고 말하든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꿈을 찾은 덕분에 그동안 우울하게만 들려오던 “복학”이라는 단어마저도 사랑스럽게 보였다. 빨리 학교에 가서 공부를 시작하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동안 매번 매 맞은 강아지 마냥 기 죽은 채 학교를 다녔는데, 꿈을 찾았으니 그에 걸맞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따라서 전공에 맞게 영어회화, 영어독해 등을 혼자 공부하며 지식을 쌓기도 하고 외적으로도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서 다이어트에 도전하기도 했다.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 진로 모두 갖춘 덕분인지 복학이 더더욱 기다려졌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해 20학번들은 서로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해 서로 사이가 어색할 것이고, 내가 친근하게 다가가기만 하면 얼마든지 그들과 자연스레 섞여서 재밌는 대학생활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얼마 후, 갑작스레 재확산된 코로나19로 인해 7주간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겠다는 학교 측의 공지가 떴다. 갑작스레 결정된 사안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최대한 너그럽게 이해해보려고 했다. 너무나도 아쉬웠지만 비대면으로 동영상 강의를 듣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강의도 밀리지 않게 제 시간에 맞춰 듣고, 실시간 수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조별과제에서 조장 역할을 맡아 총대를 매기도 했다. 과제가 미친듯이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원했던 대학생활인 만큼 꾹 참고 최선을 다해 제 몫을 해냈다. 그동안 스스로를 ‘나이만 먹은 철없는 어른아이’라고만 여겨왔는데 이렇게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는 모습이 내가 봐도 참 대견해보였다.
하지만 뭐든 과하면 쉽게 지치는 법이다. 9월 중순 쯤 개인과제, 조별과제, 대외활동 및 교내활동 등 하필 중요한 일정들이 한꺼번에 겹치는 바람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상황이었다. 조금 쉴 만하면 ‘새로운 과제가 있습니다.’ 라는 알림이 찾아와서 나를 괴롭혔다. 설상가상으로 열심히 생각하고 시간을 투자해서 제출한 과제는 교수님께 심한 혹평을 듣기도 했다. 대외활동에서 글쓰기로 많은 호평을 들은 것이 생각나 일부러 글쓰기, 토론 등 논리적인 사고가 요구되는 수업을 신청한 것인데 예상치 못한 혹평에 자신감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냥 빨리 중간고사가 끝나고 학교나 가서 새 친구를 사귀고 싶었다.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갈수록 확진자도 줄어드는 상황이었기에 당연히 대면 수업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2학기는 전면 비대면으로 결정이 났다. 이에 코로나 블루를 심하게 앓아 매일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다가 지쳐 쓰려져 잠에 들곤 했다.
그래도 아직 두 가지 희망은 존재했다. 첫 번째로 ‘융복합글쓰기’라는 교양필수 과목에서 10월 말에 한 번 대면야외수업을 진행하겠다는 공지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가서 친근하고 편안한 선배 이미지를 보여줄 생각에 너무나도 설레고 떨렸다. 그런데 막상 학교를 가 보니, 이미 자기들끼리 다 친해져있어서 무리에 함부로 낄 수가 없었다. 결국 나홀로 학교를 돌아다녔는데, 그 모습이 여간 초라해보이지 않았다.
두 번째로는 내가 이번에 들어간 동아리에서 신입생환영회를 개최하는 것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괜히 신입생들 노는데 복학생이 껴드는 것보단 그래도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18,19학번들과 함께 친해지는 것이 훨씬 나았다. 친해지면 같이 놀러다니기도 하고 취업, 진로 등 현실적인 고민을 나눠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는 평소에 술자리를 잘 나가지 않는 성격이었기 때문인지 그런 시끄러운 분위기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또한 나를 제외한 모든 회원들이 연애, 친구관계 등 공통분모를 갖추고 있었기에 더욱 소외감이 들었다. ‘차라리 가지 말걸.’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입생환영회는 최악이었다. 신입생은 고작 2명만 참석하고 기존 회원들끼리만 재밌게 노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던 내 자신이 멍청해보였다. 그토록 기대를 품고 시작한 복학이었는데 내가 원하는 건 하나도 못 이룬 것만 같아 또 다시 극심한 우울증이 재발한 것에 이어 폭식증까지 생기고 말았다. 정말 열심히 해 온 자기관리마저도 다 손놓아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기말고사 기간에도 공부에 온전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이번 학기는 저번처럼 공부를 아예 포기하진 않았기 때문인지 성적이 오르긴 했다. (사실 거기서 더 떨어질 성적이 없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학과 내 다른 친구들은 나와 달리 모두 학점 4점대 이상의 우수한 성적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솔직히 말해, 우리 학과 20학번이 19학번에 비해 비교적 입결도 낮고, 수업할 때도 나보다 부족해보이는 학생들이 제법 많았기에 학점을 쉽게 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내 예상과 너무나도 달랐다. 휴학하는 동안 정말 많은 것을 깨우치고 성장했다고 줄곧 믿어왔는데 그간 내가 해온 노력들마저도 배신당하는 기분이었다.
결국 한 번 더 학생상담센터에 손을 내밀기로 했다. 여름방학쯤에 진로상담 고민을 나눴던 선생님께서 내 고민에 귀 기울여주고 진심어린 조언을 해준 것이 생각나 그 분께 다시 상담을 요청했다. 상담선생님께서도 역시 지난번 나와 상담했던 내용들을 모두 다 기억하고 있었다. 덕분에 좀 더 친근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상담이 진행되었다.
나는 마치 친한 친구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듯 선생님께 앞서 말한 그동안 마음속에만 쌓아두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덧붙여 ‘내 친구들은 이제 졸업반인데 나는 이제 겨우 1학년을 끝냈다.’ , ‘군대를 다녀온 것도 아닌데 26살에 졸업할 예정이라 벌써부터 조급해진다.’ , ‘나이만 먹고 모든 게 다 부족한 것 같다.’ , ‘공부는 못하면서 교육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하는 내 모습이 너무 이상해보인다.’ 등의 사적인 고민마저도 마구 털어놓았다. 선생님께서는 무작정 내 고민을 부정하지 않고 지금 내가 느끼는 답답함, 불안함 등을 모두 껴안아주셨다. 항상 스스로에게 채찍질하기 바빴던 나에게 당근을 건네주신 것이다. 사범대라는 어렵고 힘든 곳에 와서 이정도로 해내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거라며 격려를 해주시는데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또한 뒤늦게 적성을 찾아서 영남대에 입학한 사람들, 재수해서 학교에 들어왔으나 다른 목표가 있어서 입시에 재도전을 하거나 다른 이유로 휴학을 결심한 사람들의 사례를 들어주시면서 나를 위로해주셨다. 마지막으로 세상엔 다양한 길이 있고 내가 가는 길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님을 강조하시면서 상담을 끝마쳤다.
선생님의 진심 어린 말씀에 감동받아 울컥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이상적인 말들 (좀 뒤쳐지면 어때, 느려도 괜찮아 등)만 귀 기울여 듣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점이 들었다. 그래서 상담 설문조사를 마치고, 인터넷에서 ‘26살 여자 졸업’ , ‘취업 나이 마지노선’ 등 수만가지 정보는 다 찾아봤다. 늦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 상담을 받아보고 인터넷을 찾아보면서 느낀 점은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많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다양하다는 것이다. 늦은 나이라고 해서 학업, 취업을 포기할 것도 아니면서 그동안 혼자 속앓이를 한 것이 참 바보같았다. 걱정한 시간만큼 더 열심히 공부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서야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엔 다양한 길이 있다.’의 참뜻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남들이 늦었다고 하든, 스스로가 늦었다고 생각하든 그건 크게 중요치 않다. 설령 늦었다고 해도 끝까지 해보려는 자세와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앞으로는 상담선생님과 약속한 것처럼 숫자에 얽매여서 걱정만 하는 습관, 마인드를 하나둘씩 떨쳐내보려고 한다. 나중에 정말로 취업할 시기가 되었을 때, “야, 그때 왜 그랬어? 왜 걱정만 하고 아무것도 안 했어?” 라며 스스로 자책하는 일이 없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