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학년도 이용 후기 공모전 장려상5 작품 'Y또! 멘토링 멘티 후기' N
No.1514421학생상담센터 이용후기
2020학년도 이용 후기 공모전 장려상 작품
(학과 이름 등 개인정보를 제외함)
「Y또!」, 영남대학교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필자는 금융 공기업 취업을 노리는 취업 준비생이다. ㄱ대학교 경영학부에서 4학년까지 다니고 졸업 유예를 하면서 일반 공기업과 금융 공기업을 함께 준비하며 1년을 보냈다. 필자는 아직까지도 이 날을 기억한다. 2019년 11월 예금보험공사 불합격 통보를 받은 날(예금보험공사 서류 합격자임), ㄱ대학교 도서관 우수이용자 시상식이 있었는데 너무 부끄러워서 상장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기념사진이 찍혔다. 그 때가 사실상 ㄱ대학교에서 찍힌 마지막 사진이 되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교직원과 교수 몇 명만이 필자의 장려상 수상을 축하해 주었고(4학년 때는 ㄱ대 전체 2등이었음), 후배 학우들은 「저 선배, 공기업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떨어졌네?」 하면서 비아냥거렸다. 이 날 저녁 우울증에 시달려서 아르바이트마저 빠져서 사장에게 크게 혼난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원래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재무회계를 전공하려고 했었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공백 기간도 메울 겸 석사 학위라도 취득하자는 심산이 있었다. 학업 성적이 좋지 못하여 ㅂ대학교 대학원이나 ㅇ대학교 대학원은 무리였고, ㄱ대학원이나 ㄷ대학교 대학원에 가서라도 공백을 메우려고 했다. 필자가 3학년이었을 때 마케팅원론을 가르치던 교수도 「취업을 못 했다면 대학원에 가서라도 석사라도 따고 오라.」며 대학원 진학을 권유했었다. 안타깝게도 필자와 알고 지내던 한 교직원이 「야 인마, 네 성적으로 대학원은 못 간다.」며 대학원 진학을 말리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차선책으로 생각한 것이 학사 편입이다. ㄱ대 교수와 교직원에게도 대학원 진학만 언급을 했지 학사편입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았다. 가족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교수와 교직원, 가족들은 필자의 학사편입 사실을 잘 모른다. 아니, 모르는 게 약이 아닌가.
원래 학사편입도 학사편입 후 재학 중 인턴 혹은 정규직 채용을 상정하여 야간대가 있는지의 여부를 제일 먼저 고려하였다. 그 다음으로 비수도권 인재 충족 여부를 따지는 필자의 성향상 비수도권 학교인지 아닌지를 고려하였다. 이렇게 해서 낙점된 곳이 영남대학교였다.
필자가 영남대학교로 학사편입을 하게 된 또다른 이유도 계명대학교를 다녔을 적 전공심화를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도 있었다. 전적 대학에서 투자론, 경영전략, 계량경제학, 재정학, 게임이론, 화폐금융론을 수강하지 않은 것에 대한 그 아쉬움. 또, 전적 대학에서 학점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학점을 편입 후에는 학점을 잘 받아야 한다는 절박감도 들었다. 실제로도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한국소비자원은 전공과목의 성적을 보고 있었다.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에도 그랬다.
이러한 이유로 영남대학교로 학사편입하기로 결심하였으며, 2019년 12월 16일 지원서를 썼다. 새 해 첫 주에 필답고사도 치르고, 2020년 1월 30일 합격 통보도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영남대학교 무역학부를 다니고 있다.
그러나, 편입 후 첫 학기는 기대와는 다르게 아쉬움이 많은 학기였다. 편입 동기들 얼굴도 보지 못하고 같은 수업을 듣는 동료 수강생들의 얼굴도 교수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온라인 강의로 수업을 들어야 했기 때문에 「대면 수업은 언제 하려나?」 하면서 대면 수업을 들을 날을 손가락으로 세고 있었다. 아쉽게도 기말고사 종료 시점까지 대면 강의는 이루어지지 못했고, 전공핵심 과목인 통상정책론 과목만 유일하게 대면으로 시험이 진행되었다.
그래서 영남대학교 학생이 되어서 영남대학교 학생을 처음 만난 것은 전공수업이 아닌 비교과 활동에서였다. 그것도 무심코 지원했던 「Y또!」에서였다. 이렇게 해서 영남대학교 학생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아쉽게도 무역학부에서는 「Y또!」 멘토나 멘티로 지원한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학생상담센터에서도 전화로 「멘토가 본인의 전공과 다른데 괜찮겠느냐?」고 전화가 왔을 정도이다. 전공이 다르면 뭐 어떤가?(계명대는 신청자의 전공이 멘토가 없을 경우 무조건 탈락시켰음. 이 때가 2017년이다.) 그래서 멘토의 전공이 달라도 군말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멘토의 전공은 행정학). 오히려 이게 기회가 될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는가?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세가 여전한 탓인지 대면 만남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처음 두 번 정도 대면으로 진행하다가 대학본부에서 비대면으로 진행하라는 지침을 내려서 이후로는 전화통화나 카카오톡으로만 멘토링이 진행되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멘토가 전공에 구애받지 않는 친화력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22살의 어린 나이에 대외활동을 하면서 예비군 n년차인 고학번들을 이끌어 본 적이 있다 보니(실제로도 멘토는 대구은행 대학생 홍보대사를 하면서 기획팀장도 했음) 나이 많은 멘티도 잘 이끌어주었다(멘티가 필자를 포함해서 2명인데, 모두 멘토보다 나이가 많다). 멘토와는 전공이 다르기 때문에 필자의 취약 요소였던 시간 관리와 계획 관리를 위주로 상담을 받았다.
필자는 취업 준비를 하면서도 시간에 쫓겨 살았는데, 멘토와 상담을 받으면서 지금까지의 모습을 반성해 보았을 뿐 아니라 기말고사와 방학 중 계획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전에는 계획을 대전제만 짜 놓고 중전제와 소전제는 짜지도 않았는데 멘토의 조언대로 중전제와 소전제까지 구체적으로 짜다 보니 주 3일을 야간 아르바이트에 시달리면서도 계획을 예정대로 지킬 수 있었다. 기말고사 기간에는 실제로도 기간을 다 지켜서 4.5 만점에 4.0에 조금 못 미치는 성적을 받을 수 있었으며, 야간강좌개설부의 무역학부 3학년생 35명 중에서 2등을 할 수 있었다.
멘토와의 만남은 Y또에서 끝나지 않았다.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카네기 리더십 캠프까지 수료했는데, 멘토와 기수까지 같았다는 점에서 세상은 좁다는 것을 느꼈으며 멘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멘토를 본받아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필자가 멘토처럼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