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학년도 상담센터이용후기 공모전 입상2 작품 '집단상담' N
No.1820014학생상담센터 이용후기
2021학년도 이용후기 공모전 입상 작품
(학과 이름 등 개인정보를 제외함)
<2020학년도 동계방학 집단상담 프로그램 ‘방학, 라이프밸런스 맞추기’>
바싹 마른 겨울, 맑은 두 시간의 소나기
덜컹거림이 잦은 밤이다. 꿈속의 나는 기차를 탔는지 차를 탔는지 모를 만큼 몸이 붕 떴다, 가라앉길 반복한다. 폐로 호흡하고 피부에 닿는 한기에 솜털이 곤두서는 기분을 느낀다. 일순 눈을 뜨며 패턴이 촘촘히 박힌 천장을 마주한다. 한창 아침이 지나고 있었다. 숨소리마저 소음으로 치환되는 나의 방에 초침 소리가 울린다. 오후 두 시를 막 지날 무렵이었다. 나는 자주 아침을 놓치는 일이 많았다. 무한히 반복되는 아침이었으나 나의 하루 속 하루는 지나치게 유한적이었다.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던 날이다. 동계방학 집단상담 공고가 올라와 있었다. 그 중 ‘방학, 라이프 밸런스 맞추기’ 프로그램이 가장 눈에 띄었다. 오전 열 시에 비대면으로 만나 강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는 커리큘럼이었다. 어쩐지 나는 이것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명쾌하게 머리를 돌리기 전, 손은 이미 신청을 하고 있었고 나는 후회하지 않을 거란 확신을 가진 채 잠자리에 들었다. 눈을 뜬 시간이 오후 두 시보다 이른 시간이길, 꿈에 발목 잡혀 눈을 뜨지 못하는 일이 없길 생각하는 밤이 기대로 물들었다.
커리큘럼에 따라 화상 채팅으로 아침 열 시에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강사님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함께 상담을 받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고작 일주일에 한 번, 하루 두 시간씩 총 4회에 거쳐 이루어지는 상담인지라 어색함이 여실히 묻어나는 대화였으나 그런데도 즐거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코로나 이후로 나의 하루가, 내뱉는 숨결조차도 우울에 젖어있었던 것에 비하면 크나큰 발전이라 여겨진다. 나의 자아를 되찾는 기분. 집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도 나의 하루에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이들을 만난다는 것. 고작 두 시간뿐일 텐데도 삶을 돌아볼 기회를 얻고 나를 응원할 수 있다는 것.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명상하기도 하고 편지를 쓰기도 한다. 나의 삶에는 나를 위해 편지를 쓰는 이들은 썩 많지 않다. 특히나 나 자신을 위해 쓰는 편지는 손에 꼽는다. 쓸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내 자아는 나에게 아주 가혹하다. 나의 자아는 나를 채찍질하느라 하루를 거진 쏟아붓고 그것마저도 모자라 잦은 번뇌의 굴레에 나를 가둔다. 나를 보듬고 응원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사치스럽다. 편협한 시야를 가지고 나를 박해 하는 일. 이 일을 그만둘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위한 편지 쓰기 시간이었다. 나를 위해 편지를 쓴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가장 먼저 존중하고 나의 자아를 발견해 상처를 치료해주는 일이다. 이 일은 나 뿐만 아니라 다른 학우들에게도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곤 했다.
펜을 들고 편지를 쓴다. 마땅한 편지지가 없어 작은 메모지에 꾹꾹 힘을 줘 글을 쓴다. 어려움을 느꼈다. 검은 잉크가 번져가는 만큼 나에게 위로가 번진다. 우울함을 위로하는 내가 있음을 온 피부로 깨닫는다. 이렇게 까지 나의 삶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너는 알고 있을는지. 호흡의 원류에서 발견한 열정을 찾는 일이 이젠 더는 버겁지 않다.
내 편지의 문장을 발췌한다.
‘마음을 쌓아 올리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는 시간을 겪고 있을 OO야. 잊지 못할 과거와 바꿀 수 있는 미래를 결정 짓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현재임을 잊지 마. OO의 순간 순간이 과거로 치닫는 지금,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나 자신을 너 스스로가 아주 많이 믿었으면 해. 너에겐 항상 잊지 못할 과거와 찬란한 미래가 있다는 걸 현재의 나는 이미 알고 있어.’
평소 이런 말을 내가 아닌 타인에게도 한 적이 있을까. 타인이 아닌 나에게는 얼마나 더 이런 말을 해주는 걸 박하게 굴었을까. 아무래도 이번 집단상담이 아니었다면 절대 내게 해주지 않았을 말이다. 겨울, 혹은 사막 마냥 황량한 나의 하루 속에 두 시간 가량의 눈이 혹은 소나기가 내린 기분이다.
코로나 전에도 얕은 우울함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 꿈속의 나는 어디론가 도망치거나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것은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는 나라는 걸 알게 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집단상담을 받은 후에는 나와 공감대가 있다는 사람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우울이 이제는 죄가 아니라는 것도 인정하게 되었다. 나의 우울의 원천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이쯤이다. 상담을 받으며 우울을 인정하고 나의 실패를 온전히 끌어안는 법을 배웠으니 말이다. 진심으로 다른 학우들에게도 방학마다 실행되는 상담 프로그램을 추천하고 싶다. 집단상담이 아닌 개인상담이라도 좋다.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위로 받는 시간이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